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화소설은 저에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실 우화 자체도 익숙하지 않네요. 당장 떠오르는 건 언제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이솝 우화정도니까요.
철학 교양 수업 때문에 읽었던 동물농장도 일종의 우화소설이라고 칠 수 있을까요? 사회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서, 동물로 빗대 풍자하는 소설이었죠. 이 책을 읽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현 시대를 비판이나 풍자하지는 않고,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지만요.
야생의 자유 (김혜로. 보민출판사 2025)
옛날 북미 대륙에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늑대 부족이 있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현지 원주민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용맹한 늑대 부족은, 유럽으로부터 넘어온 백인들이 북미 대륙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겪게 됩니다. 백인들의 사회 방식에 동화한 현지 원주민 부족이 늑대 부족을 탄압하여 자주권을 빼앗으려 하면서 갈등은 점차 고조되는데요. 이 책은 그로부터 시작된 늑대부족의 독립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마치 뮤지컬처럼 풀어냅니다.
그나저나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마치 ‘이건 우리나라 이야기야!’ 라고 외치는 듯 합니다. 늑대라는 동물과 북미 원주민들로 빗대어 간결하게 쓰여져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더 와닿기도 합니다.
근현대사를 깊게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교과서 내용이라던가, 각종 매체나 미디어에서 노출된 이야기에는 익숙하긴 할 겁니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인 저도,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 이토 히로부미 구나!’, ‘이 사람은 안중근이로구나!’ 라는 식으로요.
각 장의 제목이 너무나 뚜렷해서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RESISTANCE(저항), DESPOTISM(압제), PROPAGANDA(선전), LIBERTY(자유)..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를 얻기까지 겪게 되는 핵심 키워드들이 각 장의 제목으로 되어있어요.
이런 각 장의 순서도 그렇고, 등장인물도 매우 익숙해서 결말을 아는 역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큰 줄거리보단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나, 각종 매체에서 접하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각 개별 사건에 초점을 맞춘게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맥락을 한 눈에 들여다본적이 많지 않은데요. 그 큰 줄기가 간략하게나마 우화로 각색되어 읽히니 도리어 근현대사 관련된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까 마치 뮤지컬 같다고 했었는데, 중간 중간에 주요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랫말이 적혀져 있어요. (마치 톨킨의 소설처럼!) 명료한 등장인물과 노랫말들 덕분에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처럼 장면 장면들이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작가분이 이런 연출에 상당히 공들였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말하는 늑대 부족'의 독립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독립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등장인물 중 한 인간 목사와 늑대의 대화입니다.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늑대는 본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 종교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동물이 없겠지만, 작중 목사는 ‘구원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며 동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과거 인종차별과 노예제도가 만연했던 시절, 그 사람들을 대하던 종교인들도 이런한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선민사상에 매몰된 채, 본인들의 ‘자유’와 ‘구원’만 추구하는 모습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물론 작가님이 이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향후 전개에 당위성을 위해 삽입한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등장인물은 본인의 고집과 이기심 때문에 좋지 않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거든요. 굳이 의도하진 않았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볼만 한 지점입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본인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고,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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