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방탈출, 자전거 여행. 공통점이 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고생해서 한다는 점이다.
- 사먹으면 편한 걸, 굳이 식재료를 사서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기.
- 치열한 예약을 뚫고, 비싼 돈을 내어 스스로 갇힌 후 끙끙대며 방을 탈출하기.
- 한강에서만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짐을 바리바리 지고 부산까지 자전거 타고 가기.
누군가는 불편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럴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상당히 낭만 있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약 800km를 오롯이 두 다리로만 걷는 여행. 감당할만한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으며 프랑스 남쪽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걷는 길.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영적으로도 충만한 여정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막연히 트래킹 여행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30일동안 유럽을 비교적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언제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싶어했을까? 적어도 20대 초반에는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친한 지인분이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있다고 한 말을 듣고 산티아고 관련 책을 선물해주셨으니까. 그 즈음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는 책이 한창 유행을 하긴 했었지만, 난 최근에서야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그 책을 집필했다는 걸 알았다.

본격적으로 마음 속에 품은 발단은 제주 올레길이었다. 형이 군대에 가기 전에 제주도에 간 가족 여행에서, 다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몹시 추웠지만 겨울 제주도의 풍경을 오롯이 두 눈과 두 다리에 담았다. 제주 올레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촉발되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 제주 올레길 때문에 언젠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리라 처음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20대 초반에 이미 마음을 먹었지만, 순례길을 떠날 여건은 쉽게 갖춰지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로 코이카를 다녀오고, 학교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기까지, 한달을 통으로 시간 내기도 힘들었거니와 아직 경제적으로도 쉽사리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나만의 버킷리스트 1번으로 담아두었다.
그 무렵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TV프로그램이 하나 둘 방영되기 시작했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나온 스페인 하숙을 비롯하여 god가 등장한 같이 걸을까 라는 프로그램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언급하면 자세히는 몰라도 스페인 하숙에서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하는 말. “그런데 거길 진짜 갈거야?”


그러다가 2021년에 이직을 했다. 현재 회사의 가장 좋은 점은 3년 근속할때마다 30일이라는 안식휴가를 준다는 것. 파워 J인 나는 입사할때부터 언제 안식휴가를 쓰면 제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캘린더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4년뒤인 2025년 추석연휴. 개인연차 하루도 안쓰고 자그마치 8일을 연달아 쉴수있는 꿀같은 황금 연휴를.

30일 안식휴가로는 출국과 귀국을 고려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금 빠듯할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 연휴의 앞이나 뒤로 붙이면 더할나위 없겠다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건 몇십 년뒤에나 가능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주변에 틈만 나면 말하고 다녔다. 나는 2025년 추석연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거야. 말리지마라. 내가 먼저 그때 휴가쓴다고 했으니까 새치기하지마쇼!

그리하여 2025년 9월 22일부터 10월 25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이제부터 길 위에서의 기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리해두려 한다. (부디 끝까지 잘 올려야할텐데.) 이젠 한국인 순례객이 하도 많아서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는 참고를,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불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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