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가기로 마음 먹은 진 오래됐지만, 체력에 대해선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 경험도 있는 데다가 걷는 것도 자신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본격적으로 일정을 확정하고 계획을 세우다보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운동과 친하지 않은 내가 과연 피레네 산맥을 넘을 수 있을까? 많이 걸어봤자 20km 걸어본 게 전부인데, 그 이상을 걸을 수 있을까? 그것도 매일 연속해서?
결국 미리 체력 훈련도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후기에서 미리 훈련한 기록을 찾기란 힘들었다.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걸으면 되어서 그랬던 걸까. 나처럼 일정이 빡빡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나 같은 파워 J가 참고할 만한 추천 훈련 루틴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또 다시 ChatGPT를 활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600km를 걷고, 200Km를 자전거 타서 3주만에 완주하고 싶어. 남은 12주 동안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 라는 식의 프롬프트를 작성하자, 놀랍게도 ChatGPT는 다음과 같은 12주 훈련 루틴을 제시했다.
- 1주차: 45km · 배낭 5kg · 적응기 시작
- 2주차: 55km · 배낭 6kg · 배낭 5→6kg 전환 완성
- 3주차: 60km · 배낭 6kg · 볼륨 상승 · 템포·인터벌 1회
- 4주차: 65km · 배낭 6kg · 볼륨 상승 · 경사 세션 강화
- 5주차: 70km · 배낭 6kg · 최대 볼륨 접근
- 6주차: 55km · 배낭 5kg · 델로드(회복 주간)
- 7주차: 27km · 배낭 6kg · 실전화 시작 · 6kg 유지
- 8주차: 75km · 배낭 6kg · 거리·언덕 강도 추가
- 9주차: 80km · 배낭 6kg · 연속 2일 25km 리허설
- 10주차: 85km · 배낭 7kg · 특화 훈련 · 7kg 배낭 준비 시작
- 11주차: 85km · 배낭 7kg · 연속 3일 25~30km 리허설
- 12주차: 50km · 배낭 6kg · 테이퍼 · 볼륨 40% 감소 · 컨디셔닝·휴식 집중
매주 나의 컨디션과 업무, 개인적인 약속을 고려하여 세부적인 일정을 조정했다. 그런데 5주차까지 진행하자, 장거리 라이딩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6주차부터 다시 ChatGPT에 남은 훈련 루틴 수정을 요청했다.
- 6주차 — 67km eq
★ 미니 백투백: 20km + 25km 걷기, 배낭 6kg
루틴: 월 8km 걷기 · 수 20km 걷기 · 목 자전거 8km · 토 25km 걷기 · 일 자전거 14km
- 7주차 — 27km eq · 델로드
★ 완전 회복 및 스트레칭·폼롤러 집중
루틴: 가벼운 걷기 5~8km × 3회
- 8주차 — 92km eq
★ 1차 백투백: 35km + 25km 걷기, 배낭 6kg
루틴: 화 자전거 10km · 목 35km 걷기 · 금 자전거 23km · 토 25km 걷기 · 인클라인 40분
- 9주차 — 100km eq
★ 2차 백투백: 40km + 30km 걷기
★ 하이브리드: 자전거 50km 후 걷기 10km
- 10주차 — 106km eq
★ 자전거 60km 후 걷기 10km
루틴: 언덕 라이딩 인터벌 8분 × 4회 · 인터벌 라이딩 20km + 회복 걷기 5km
- 11주차 — 113km eq
★ 단일 라이딩 80km · 걷기 30km
루틴: 보급·패니어를 포함한 실전 자전거 루트 시뮬레이션
- 12주차 — 66km eq · 테이퍼
★ 걷기 15km × 2회 · 자전거 20km × 1회 · 장비 점검.
부하 30~40% 감소 · 휴식·수면 · 스트레칭·족욕·테이핑 집중
델로드 테이퍼, 백투백 등 전문적인 용어까지 동원한 이 루틴은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회복 워크. 배낭없이 빠르게 걸으면서 피로 회복하는 날
- 롱 워크. 배낭 무게를 늘려가며 오래 걷기
- 트레킹. 배낭 무게를 늘려가며 둘레길 걷기
- LSD 러닝. (완전 장거리는 아니지만) 느린 속도로 오래달리기. 달리기의 경우 달성 거리를 1.5배로 적용해서 계산했다.
- 자전거 라이딩. 달성 거리를 0.25배로 적용해서 계산했다.

5주차까지는 그냥 걷기만 하다가, 라이딩이 포함되다보니 목표 주간거리가 엄청나게 늘었다. 배낭 무게도 점차 늘려서 8kg까지 메고 걸어보기도 했고, 일부로 비가 오는 날 우비를 쓰고 걸어보기도 했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건 훈련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직장인이라서 백투백이라고 하는 연속해서 오래 걷는 훈련 시간을 마련하기 곤란했다. 그래서 일부로 퇴근하고 20km 걷고 집에 오거나, 무더운 여름날 반차를 내고 회사에서 집까지 44km를 걸어오기도 했다.

걸을 때는 주로 서울둘레길을 애용했다. 포장된 길부터 비포장 길, 갓길,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산로 등 산티아고 준비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코스다. 그리고 다녀와서 하는 말이지만 둘레길만 충분히 연습해도 산티아고는 완주할 수 있다. 좀 오래 걸을 뿐이지, 길의 난이도는 둘레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 하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체력 훈련은 물론이고, 컨디션 이슈를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발이 젖은 상태로 걷다가 생긴 물집, 일부로 겸사겸사 살 빼겠다고 탄수화물을 안먹다가 경험한 봉크, 족저근막염과 발바닥 아치 문제(지금 와서보니 고관절 문제이긴 했지만), 허벅지 쓸림 등 미리 경험하지 않았다면 산티아고에서 곤란했을 테다.
이 훈련 과정을 옆에서 보고 듣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준비하냐며 의아해했다. 내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는 이유는 딱 하나. 부족한 체력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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