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하면서는 책이나 물, 음료수로 무게를 채웠기 때문에, 실제로 짐을 꾸리면 가방이 얼마나 무거워질 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평소에도 여행할 때 가벼운 짐을 꾸리는 터라, 비교적 수월하게 짐을 꾸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배낭은 본인 몸무게의 10%가 이상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5kg, 6kg 정도로 컴팩트하게 챙겨가시는 것 같다. 나도 물 제외하고 7kg 정도를 챙기는 걸로 목표를 잡았다. 내 준비물이 뭐가 많겠냐며 무거워봤자 7kg도 못 가게거니 생각했다.
근데 웬걸. 막상 배낭에 이것저것 넣다보니 첫 무게는 10.5kg. 심지어 물이나 음료를 포함하지 않았는데도…욕심을 덜어내서 9kg. 아이패드 미니까지 포기하며 8kg까지 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를 챙길 수 밖에 없어서 9kg 배낭을 메게 되었다. 왜 아이패드를 포기할 수 없었는지는 나중에…


얼마나 고심했는지 각 준비물들의 무게까지 적어뒀었다. 참고로 옷가지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의 현지 날씨를 고려해서 준비했다.
# 착용 장비. 배낭에 넣지 않고 매일 걸을 때 착용하는 장비들.
- 신발(호카 카하 2)
- 데카트론 모자
- 데카트론 바지
- 데카트론 러닝 긴팔티
- 무신사 토시
- 다이소 반사 띠
- 속건성 속옷
- 인진지 트레킹 양말 세트
- 데카트론 접이식 스틱 1개
- 접이식 물병
# 의류.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갈아입을 옷이나 날씨에 맞춰 입을 옷
- 여분의류 (660g)
- 속건성 속옷 2개
- 속건성 반팔티
- 편한 반바지 1개 (일상 및 잠옷 대용)
- 편한 긴바지 1개 (일상 및 잠옷 대용)
- 여분 양말 (인진지 세트 1개 + 발가락 양말 1개)
- 얇은 바람막이 (486g)
- 패커블 패딩 (415g)
- 스타벅스 우의 (240g)
# 수면 & 휴식 용. 쾌적한 수면과 수면 전까지의 휴식을 위해서 챙김
- 네이처하이크 침낭 (800g)
- 우포스 슬리퍼 + 더스트백 (407g)
- 보조 가방 (데카트론 접이식 크로스백) (126g)
# 전자기기
- 카메라 (342g)
- 고릴라 삼각대 (316g)
- 아이패드 미니 + 접이식 키보드 (480g)
- 유선 이어폰 (충전을 신경쓰고 싶지 않았음)
- 보조배터리 (20000mAh) (300g)
- 각종 충전기 및 케이블 (250g)
- 헤드랜턴 (페츨 헤드램프 티키나)
- 무선 녹음기
# 위생 & 세탁
- 세면도구 (273g)
- 샴푸바 + 옥수수 분해망
- 페이스/바디바 + 옥수수 분해망
- 칫솔 + 고체치약
- 면도기
- 속건성 수건
- 비상약들 (268g)
- 빨래도구 (111g)
- 빨래망
- 빨래비누 + 분해망 + 빨래집게
- 선크림 및 화장품 (250g)
나의 고심의 흔적을 하나하나 자세히 소개해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과거의 나에게 열심히도 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 배낭
일단 배낭부터 구입했다. 창고 구석에 등산용 배낭이 하나 있긴 했지만, 긴 트레킹을 소화할 수는 없어서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정말로.
보통 오스프리 배낭이나 데카트론에서 가성비 좋은 배낭을 사는 듯 하다. 그래서 나도 아웃도어 매장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교회 청년부 어떤 분이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마침 산티아고에 가져갔던 배낭을 보여주셨고, 그렇게 킬리 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킬리. 여행자를 위한 배낭을 판매하는 국내 브랜드. 배낭여행부터 백패킹, 트레킹, 순례길에 적합한 가방들이 준비되어있다. 킬리는 연남동에서 카페와 함께 샵을 운영하는데, 온라인으로 가방을 주문한 뒤에 방문해서 가방 메는 법을 교육 받았다.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파주로 옮기신 듯 하다.)
내가 고른 가방은 글라시어 에어 화이트 40L. 마침 세일해서 24만원이라 적당한 가격이기도 했고, 1.6kg 정도의 가벼운 무게에 넉넉한 용량. 칙칙하지 않은 하얀색. 캐리어처럼 중간이 활짝 열리기도 하고, 롤탑까지 가능한게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도 딱 순례길을 겨낭하고 만드신 배낭이라고 설명하셨다. 결과적으로는 대만족. 이 가방이 아까워서라도 트레킹을 계속 다녀야하나 싶다.

# 신발
그 다음은 신발. 예전부터 호카 신발을 신어보고 싶었다. 김포 현대 아울렛에 방문하여 트레킹화 두 켤레를 샀다. 하나는 실전용인 카하2와 연습용으로 쓸 호카 아나카파. 아나카파가 좀 더 가볍긴 했지만 실전은 더 튼튼한 카하2가 어울릴 듯 했다.
굳이 두 켤레를 산 이유는? 보통 트레킹화가 600Km 쯤 걸으면 밑창이 닳아서 수명을 다한다고 들었다. 나의 걷기 일정은 아슬아슬하게 600km 정도이고 나머지는 자전거를 타서 한 켤레로 충분하겠지만, 연습량을 포함하면 600km은 훌쩍 넘을테니 연습용은 따로 구비하는게 나아보였다. 물론 떠나기 전에 실전용 신발을 신고 5~10km정도 걸어보면서 발을 적응시켰다.

# 의류
배낭이나 신발을 제외한 의류는 무신사나 데카트론에서 대충 구입했다. 가장 신경썼던 기준은 무게와 속건성. 가벼울수록 좋은 건 당연하고, 땀범벅이 된 옷이 최대한 빨리 말라야하니 소재를 신경썼다.
우의 같은 경우에는, 더 방수가 잘되는 걸 사갈까 고민했는데, 예전에 받아둔 헌터 콜라보 스타벅스 우의를 그냥 가져갔다.
바람막이와 패커블 패딩도 가능한 가벼운 걸 선택했다. 두 개의 조합이 살짝 무겁긴 했지만 이번 순례길에서 딱 적당한 보온감을 제공했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우포스 슬리퍼를 굳이 구입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발을 쉬게 할 리커버리용이었는데, 가벼운 산책이나 시내 관광할때 딱 제격이었다.
인진지 트레킹 양말은 다들 추천하길래 샀는데, 물집이 잡히는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발가락 양말 + 두툼한 트레킹용 양말 조합은 정말 좋았다.
# 그밖에
침낭은 보온을 위해서라기보단 혹시 모를 알베르게 침대의 나쁜 위생을 대비해서 집에 있던 걸 가져갔다. 보온 성능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가벼워서 좋았다.
시내 관광이나 식사를 위해 구겨넣을 수 있는 보조 가방을 챙기는 걸 추천한다. 컨디션이 안좋아져서 배낭을 다음 숙소로 옮기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더더욱 필수.
보조배터리는 2만 암페어짜리를 구입했는데, 알베르게마다 충전이 여의치 않은 곳도 있었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핸드폰+카메라+아이패드+무선 마이크 충전을 마음껏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헤드랜턴도 300루멘으로 밝은 걸 챙겨갔는데 아주 만족했다. 새벽녁에 출발해야 하는 날이 많은데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들판이나 산으로 들어갈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등산스틱은 접이식 한개만 사용했다. 한손에는 스틱을, 다른 한손에는 삼각대에 고정된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나처럼 사진 욕심 부리지 않을 거라면 스틱 2개를 챙기는게 더 나을 듯 싶다.
가벼운 무선 녹음기를 하나 챙겼는데. 정말 강력 추천. 걷다 보면 이런 저런 사색에 잠기는데, 그때마다 녹음기를 켜서 현재 내가 어떤 상황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녹음했다. 글로 남기는 것도 좋지만, 힘들고 지친 상태의 그 날 것이 담긴 녹음이 지금 너무 소중하다. 물론 핸드폰+이어폰 조합도 충분하겠지만, 무선 녹음기는 가볍고 가격 부담도 적다.
# 지금이라면 안 챙길 것들
일단 접이식 물병. 환경을 보호하자는 생각에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접이식 물병을 샀는데…며칠만에 물이 조금씩 새서 결국 버렸다. 그냥 마트에서 1.5L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게 제일 편했다.
샴푸바나 바디바도 애매했다. 괜히 부피를 더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선택했는데, 사용량 예측에 실패해서 결국 중간에 샴푸 하나 구매했다. 그냥 작은 여행용 샴푸나 챙길껄.
그리고 비상약을 너무 과하게 챙겼다. 종합감기약, 진통소염제, 지사제, 소화제, 목감기약 등 갖가지 약들을 사갔는데, 실제로 사용했던건 진통소염제 뿐이었다. 괜히 무겁게 가져가지말고 현지에서 샀었어도 충분했을 듯 하다. 진통소염제 정도만 챙기면 될듯.
반사 띠도 굳이 필요는 없었다. 차도를 위험하게 다니는 경우가 많이 없었다.


사실 카메라와 아이패드 등의 전자기기가 무겁긴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카메라도 야무지게 사용하면서 사진을 남겼고, 매일 아이패드로 일기를 쓰고, 책도 읽고, 크라임씬도 보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무게를 감당할 체력을 기르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포기하는 것 또한 순례의 일부니까.

혹시라도 준비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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