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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BOOK]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 찬가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표지라도 보거나, 하다못해 제목이라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거에요. 한창 서점에만 가면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내려오지 않던 책 중 하나였으니까요. 처음에 무슨 과학 책인 줄 알아서 손이 쉽게 안갔어요. 살짝 펴봤더니 소설도 아닌 것이, 생물이나 환경에 대한 다큐 내용인 줄 알았다니까요. 심지어 자간도 좁아보여서 잘 안 읽혔어요. 주변에서 이 책을 추천하시는 분이 여럿있었는데, 다음에 읽어보겠노라고 꿋꿋하게 미뤘었죠.

심지어 오늘도 베스트 셀러에 있더라니까요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이 있는걸 보고, 어라 그럼 이번 기회에 읽어볼까 생각했어요. (올해 제 독서 컨셉은 미뤄놨던 책 읽기 같긴 하네요) 밀리의 서재가 책 구독 서비스 중에선 장서량이 많긴 하지만, 막상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더라고요? 중고로 산 이북리더기를 방치하기도 아까우니까 읽기 시작했죠. 마침 책 읽을 좋은 기회도 생겨서 옳다구나 집중해서 빡 읽어보자 싶었구요.

 

이 책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민음사라는 출판사 아세요? 아니면 알로소라는 브랜드는요? 성수동에서 3월 3일까지 마치 팝업스토어같은 공간을 운영하더라고요! 2시간동안 안락한 소파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민음사 문학 전집으로 가득 차 있는 서재! 따지고 보면 저의 첫 아티스트 데이트 였죠. 처음 예약 오픈했을때는 경쟁률이 빡세지 않아서 여유롭게 예약하고 방문했는데, 이젠 일주일 단위로 예약이 열리고 전부 매진이라 또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3월 3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알로소 윈터 리빙룸

 

딴길로 새긴 했는데 아무튼, 이 책 논픽션이더라고요? 저자인 룰루 밀러의 삶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라는 어류학자를 덧씌운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중반부까지는 잘 안 읽혔어요. 본인의 가족 환경은 어땠는지,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지, 어떤 세계관을 가진 채 살아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다가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학자를 번갈아가면서 소개하니 헷갈리더라고요.

 

시점을 교차시키며 서술하는 소설들도 많긴 하죠. 그런데 소설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이 나오니까 각각 묘사하는 서술의 명도가 비슷하잖아요? 중요도에 따라 색이 다르거나, 채도가 달라지긴 하지만, 어느정도 비슷한 결은 유지하는 편이죠. 그런데 이건 논픽션이잖아요?! 심지어 저자 본인이랑 이미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을 번갈아면서 서술하니까, 이야기의 결이 잘 안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중이 잘 안 되었나봐요.

 

저자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걸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매체가 칭찬을 쏟아낸걸까? 중반부를 넘어갔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안갔어요. 허무주의에 둘러쌓인 사람의 공허한 모습만 보였거든요. 본인의 실수로 연인을 떠나보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사람이요. 갖지 못한, 찾지 못한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집착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 대상인 데이비드 조던은 그럴 듯해 보였으니까요. 온갖 자연재해와 치열한 사회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류의 상당 부분을 분류하는 큰 업적을 달성한 사람. 이름 없는 물고기에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던 사람. 저자는 그 학자를 통해 본인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찾아보면 긍정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을 거에요. 그 참혹한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전파했던 사람이거든요. 인종차별은 애교로 보일정도로 말이에요. 어류를 분류하던 학자병인지 몰라도, 사람마저 분류하고 낙인찍으며 우생학에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삶의 의미를 찾은 것처럼 보인 사람이 사실은 악마나 다름없는 일을 자행한 사람이었다니. 저자는 그 사실을 추적하면서 괴리감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악을 만드는 삶이냐 무의미한 현실이냐를 선택하라는 것 같았으니까요.

 

놀랍게도 저자는 우생학의 피해자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아요. 조던의 우생학으로 인해 임신중절까지 당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정작 그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와 서로 보듬어주면서 즐겁게 살고 있었거든요. 저자는 그 광경을 마주하고 그때서야 서로를 지탱해주는 선의가 곳곳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해요. 티끌만한 작은 존재인 우리이기에, 작은 선의로도 서로를 의미있게 만드는데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죠.

 

삶의 의미라는 주제(제가 생각하기엔)의 끝맺음은 이정도였던거 같아요. 인간찬가라고 해야할까요. 이 정도면 진부한 에세이 정도로 끝났을 텐데, 가장 소름돋는 부분이 남아있더라고요.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거에요. 네 맞아요 제목이요. 사실 책 제목이 스포일러였어요.

 

어류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물군.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보는 바로 그 물고기들. 사실 그 친구들은 한 계통이 아니라 하더라고요! 유전적으로 명확히 나눌수 있는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이는 분류로 모든 물고기를 하나의 종으로 묶기 어렵다고 해요.

 

그러니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 동안 했던 일. 어류를 분류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본인만의 기준으로 사람까지 평가했던 모든 것이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거죠. 마치 어린아이가 성대히 쌓은 모래성이 밀물이 들어와서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지식의 깊이와 사회적 지위로 자연을 규정하려 했던 한 우생학자를, 자연이 벌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겠지만, 이제는 그 어떠한 반박과 항변을 할 수 없으니 말이에요.

 

이 결과가 소름돋더라구요. 이건 소설이 아니잖아요? 실화에 기반한 논픽션이니까, 실제로 이루어진 자연의 복수니까 말이에요. 소설이란 장르에선 체감하기 힘든 결말이라, 왜 그렇게 많은 매체와 사람들이 극찬을 했는지 조금 이해가 가더라구요.

 

저와 비슷한 성향이라면, 책의 중반부까지는 잘 안읽힐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꾹 참고 흐린 눈으로 읽다보면 나쁘지 않을거라는거. 조심스럽게 추천드려요:)


오랜만에 좋은 공간에서 느긋히 소파에 기대 책을 읽다보니, 맛있는 커피가 그리워졌어요. 저녁 8시에 방문해서 어쩔 수 없이 녹차를 마셨거든요. 늦게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안와서 ㅠㅠ
작년에 처음 카페쇼에 가기도 하고, 최근엔 회사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먹고 있기도 해서! 다음 책은 이겁니다 :)

 

커피 아틀라스 - 10점
제임스 호프만 지음, 공민희 옮김/디자인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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