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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BOOK] 기획의 정석

이 책은 제가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은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한 독서모임에 들어갔거든요? 매번 컨셉이 달라지는 데, 이번에는 각자가 준비한 책을 무작위로 바꿔 읽게 되었지 뭐예요? 그래서 한 기획자 분에게 이 책을 받았답니다. 기획자들에겐 꽤나 유명한 책이라는데 전 처음 봤거든요. 세상에 기획의 정석이라니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담.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에 정석을 달 정도의 자신감이라니!

수학의 정석 아닙니다

 

단지 제목때문에 뚱한 마음이 든 건 아니었어요. 본디 개발자란, 기획자와 싸우는 직업이라고 흔히들 그러거든요. (절대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해주세요 vs. 못해요"로 대표되는 크고 작은 충돌은, 심지어 바로 오늘도 겪었었거든요. 흠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 기획자에게 회유되는 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괜히 겁났던 거죠 뭐.

 

그래도 읽어야 하니까, 딱 첫 장을 폈는데, 글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최초이자 최고의 기획자이시며, 나의 삶을 기획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라고 적혀있는게 아니겠어요? 이때부터 어라? 싶었죠. 이 사람 혹시...?

 

아니나 다를까, 대학교 선배님이셨어요. 물론 전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소문은 들었거든요. 어떤 선배가 공모전을 나가기만 하면 휩쓸고, 결국엔 내로라하는 회사에 들어갔다더라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말이죠. 뭔가 모를 내적친밀감이 생겨서 첫 장을 읽자마자 맘 속에 조그맣게 자리잡았던 주저함이 싹 사라졌어요. 그리고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찬찬히 읽어내려갔죠.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뇌과학 이야기를 언급하니까, 단순한 기획 업무 가이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무엇에 집중하고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해야 성공한 기획이 만들어진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긴 한데요. 이게 특정 업무를 위한 지침서인지, 사회심리학 교양서적인지,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런데 기획이 뭔지 아세요? 문득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전적으로는 "어떤 일을 꾸미어 계획함" 이라는데, 계획이면 극단적인 J로써 또 물러날 수 없는 영역이거든요. 크고 작은 비즈니스와 다양한 일상에서 기획이란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하는 필요성만 소거되면 삶의 청사진에도 적용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어요. 

 

혹시 아까 제가 말한거 기억나세요? 기획자에게 회유당할까봐 겁냈던거요. 역시나 조금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런.
업무의 성격을 정량, 정성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개발자인 저는 정량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이에요. 요건과 목표가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비교적 명확하니까요. 하지만 기획은 조금 결이 다르죠. 흰 도화지부터 스케치하는 과정인거고, 이런 자기계발적인 내용을 구체화해서 불특정다수(가끔은 특정인)를 설득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막막한 일이겠다 싶었어요.

 

이런 책을 읽은게 오랜만이에요. 이런 지침서나 자기계발서를 잘 안 읽거든요. 다른 이유보단 한번 읽고 적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매뉴얼처럼 계속 들고다닐 수도 없고, 좌우명처럼 달달 외우고 살기엔 현생이 너무 바쁘잖아요. 자연스럽게 이런 습관과 스킬들이 내재화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다보니 문득, 과연 저자도 매번 이런 과정을 의식하면서 했을까 싶더라구요. 이 책을 읽거나 직접 배운 사람들도 단번에 모든 과정을 숨쉬듯 적용하며 성공적인 기획자가 될 수 있진 않았겠죠.

이번 책을 읽고 남는 건 절대량이란거 같아요. 크고 작은 기획을 경험해가면서 패턴을 알게되고 정리하다보니 이런 책이 나온게 아닐까요? 크고 작은 기획을 하며 부딪히고, 회고하면서 부족한 점을 이 책으로 보완하는데 의의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업무적으로 제가 기획할 일이 생길 일은 없지만, 새해인만큼 뭐든 계획적으로 시작해야한다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중간에 창세기 말씀이 들어간 게 우연은 아닌가봐요. 다음에 읽기 시작한 책은 바로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아티스트 웨이 - 10점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경당

자, 그럼 다음 감상문이 업로드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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