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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BOOK] 커피 아틀라스 - 나의 커피 연대기 (이 까만 콩물이 뭐라고)

처음 마신 커피는 짜리몽땅한 파란색 레쓰비였어요. 왠지 모르게 커피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초등학생 시절, 동네 슈퍼 앞을 지나가다가 종이박스 뒷편으로 '5캔에 천원'이라고 써붙혀진 자태에 홀딱 넘어갔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는 커피는 해악이라고 굳게 믿으셔서 몰래 마셨어야했죠. 방에 조용히 들어가 원샷하고 다 먹은 캔은 잘 숨겨두었다가 밖에 나갈때 버리곤 했어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즈음 카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어요. 다방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를 파는 그런 카페들이요. 그 당시 한달에 받는 용돈이 5만원이었는데, 아메리카노는 한잔에 3,4천원이었으니 무척 비쌌죠. 심지어 아메리카노는 쓰다고 잘 마시지도 못해서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고 싶었으니 오죽했겠어요. 용기를 내서 새로 생긴 엔젤리너스에 들어가 카라멜 마끼아또를 사먹었는데, 저렴한 캔커피나 가끔 기분날때 마시는 프렌치 카페보다 훨씬 맛있더라고요. 물론 가격이 부담되서 몇 번 못 먹었지만요.
 
대학생이 되고 나선, 괜히 커피에 대한 허세가 생겨서 핸드드립을 배웠어요. 10회로 이루어진 그 클래스에서 핸드드립과 에어로프레스를 다뤄보고, 마지막엔 일일카페까지 해봤는데요. 그땐 아 커피는 무조건 스페셜티 핸드드립이지! 라며 우쭐했었던 거 같아요. 사실 여전히 달달한 커피를 좋아했으면서 말이죠. 어렸죠 어렸어.

최고인 줄 알았던 커피

 
더치 커피(그때는 콜드브류라고 안하고 다 더치 커피라고 했어요)를 알게 되고 나선, 직접 내려보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들더라니까요. 더치커피 머신은 너무 비싸고 커서 엄두를 못 냈고, 대신 약국에서 링거 하나 사다가 생수병에 꽂아서 내렸었어요. 단돈 500원으로 만드는 더치 커피 머신!! 약국에서 왠 젊은 사람이 링거만 하나 달랑 사니 이상하게 바라봤던 거 같긴 해요 뭐.

참 애썼던 더치커피

그 이후엔 에티오피아에 갔어요.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하니까 커피에 환장해서 에티오피아까지 간 거 같지만...그냥 어쩌다보니 가게 되었죠. 에티오피아 갈때도 핸드드립 세트를 바리바리 가져갔는데, 막상 가서 주로 마신 커피는 전통 커피였어요. (https://paulcalla.tistory.com/7 10년전에 제 글을 참고!) 커피 한잔 마시겠다고 직접 콩을 갈고, 물을 끓이고, 온도를 맞춰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게 너무 번거롭고 귀찮더라고요.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싸고 맛있는 커피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20대 중반까지 이렇게 커피 즐기고 나니까 나만의 답이 생겼어요. 커피란 무엇인가? 커피는 T.P.O 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그때 그때 다르다! 고기를 먹고 나오면서 뽑아 먹는 달달한 자판기 커피도 맛있고, 직장인의 피나 다름 없는 모닝 아메리카노는 필수이며, 선반 한구석에 있는 스틱 커피도 제법 먹을만 하니까요. 굳이 매번 스페셜티 커피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랄까요? 작년엔 처음으로 카페쇼에 가서 수많은 유명 로스터리 커피를 마시고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아직까진 이 생각이 변함 없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슨 커피를 주로 마시느냐. 휴대용 전동 그라인더에 간이 필터가 달린걸 회사에 두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어요. 유명 브랜드의 드리퍼도 아니고, 주전자도 없이 종이컵으로 조심스레 물을 따르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요. 원두도 그냥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두에요. 싱글오리진도 아니고, 합리적인 블렌드 원두로 말이죠.

아웃도어형 제품인데, 회사에서 이러고 있습니다. 회사는 아웃도어니까요.

 
네. 이거 책 리뷰 맞아요. 책 이야기는 안하고 왜 저의 커피 연대기를 떠들었냐면 이 책은 단편적인 사실로 가득찬 책이거든요! 커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커피종의 분류, 수확 방식, 공정 무역, 추출 도구, 원산지 별 특징이 쭉 나열됐어요.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로 가득찬 책이라서 왈가왈부 첨언할게 없어요. 일개 소비자인 제가 뭘 얼마나 알겠어요?
 
책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원산지별 특징은 한번 읽는다고 해서 외워지지 않는 내용이었어요. 어느 나라의 어떤 지역은 커피 품질이 좋다더라, 어떻게 커피 콩을 뽑아낸다더라, 커피 분류를 어떻게 한다더라 등 직접 원두를 구입하는 업자가 아닌 이상 쉬이 읽히진 않더라고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어요. 
 

 
물론 흥미로운 부분이 있긴 했어요. 먼저, 커피의 가격이 퀄리티와 꼭 정비례 하지는 않다는 것. 이를 테면 사향고양이의 똥으로 만들어지는 루왁커피는 매우 비싸지만, 맛이나 퀄리티 부분에 있어서는 논란이 많거든요. 물론 파나마 게이샤 같이 명성과 퀄리티가 일치하는 커피도 있지만요.
 
가장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국가 주요 수출품으로써의 커피의 위상이었어요.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의 커피벨트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수출하는 나라가 많지만 (심지어 요새는 중국도 커피를 재배한다고 해요), 각각 다른 상황과 사정으로 인해 재배 방식과 커피분류, 수확량이 달라지더라고요. 좋은 품질의 커피로 치고 올라오는 나라도 있고, 한땐 융성했으나 점점 쇠락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콩물이지만, 현지 주민들과 위정자들에겐 현실이더라구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가 걸린 현실.
 
에티오피아가 커피 원산지로 유명하지만, 슬프게도 커피 재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지에서 직접 들은 건데, 짜트(까트)라고 불리는 마약성 식물이 더 돈이 되서 커피 대신 재배하는 추세라고 하더라구요. 커피 공정무역을 중점으로 다룬 책은 아니지만, 까만 콩물 너머를 생각하게 됐어요. 현지의 노력과 커피 산업에 대해 들여다 보고 나니까, 커피라는 하나의 기호품 시장이 유지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며 애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거든요.
 

익숙한 지명들이 나와 반갑기도 했어요

 
커피는 T.P.O.다 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정도는 알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지, 바디감이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끔은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고 말이죠. 더 나아가선, 이 커피가 어떤 과정으로 내 컵에 흘러들어왔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다음은 이 책이에요! 커피가 일상에서 너무도 친숙한 기호품이라면, 흔한 취미 중 하나인 여행!
친환경적인 지속가능한 여행은 무엇일까?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 10점
홀리 터펜 지음, 배지혜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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