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임을 하던 지 방패 역할을 하는 전사는 싫었다.
정정 당당히 싸우는 게 자신 없달까…대체로 높은 체력을 자랑하는 캐릭터는 공격력이 낮아서 스릴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법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나가 떨어지면 그냥 약한 바보가 되버리니까.
그렇다면 남는 건 도적 계열.
은신해서 암살하거나, 멀리서 활 같은 걸 쓰거나 그런 직업을 좋아했다.
롤이나 오버워치에서도 그랬다. 롤에서는 제라스를 주로 했다.
그러니까 몸을 숨긴 채 일방적으로 높은 데미지를 주는 그런 캐릭터를 했었다.
어쌔신 크리드의 로고. 게임 중 암살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시절, 어쌔신 크리드 1의 트레일러를 보고 매료됐다.
치사하게 ‘은신’이라는 투명 스킬 써서 뒷치기나 하는 어설픈 암살이 아닌, 군중에 숨어 암살하는 진짜 암살.
타켓을 제거하기 위해서 완벽히 수행해야 하는 잠입,
왼팔에 숨겨진 단검과 비밀스러운 단체,
거기다가 흰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니는게 멋있어 보였다.
아쉽게도 영어 자막도 지원하지 않는 데다가, 컴퓨터 사양이 부족해서 곧장 플레이 해보진 못했다.
그렇게 아쉬움만 간직하고 있다가, 어쌔신 크리드 2, 3, 4(블랙 플래그)까지 해보고 나서야 1을 구입해서 플레이했다.
뭐, 후속작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게임은 과거 파트와 현대 파트로 나뉜다.
흔히 어쌔신 크리드하면 떠올리는 후드쟁이가 나오는 건 과거 파트로, 그 시대의 암살자가 되어 각종 미션을 수행한다.
어쌔신 크리드 1 과거 파트의 주인공은 알타이르 이븐 라 아하드로, 암살단 소속의 실력 있는 암살자다.
시대적 배경은 13세기 십자군 전쟁 말기. 살라딘과 리처드가 싸우던 시절이다.
암살단은 그 어느 쪽에도 끼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무슬림인 설정인 듯 싶다.
공간적 배경은 아크레,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등 중동이다.
어쌔신 크리드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역사적인 도시를 잘 구현했다는 것인데, 하라는 미션은 안하고 간혹 넋 놓고 배경에 취해버리기도 한다.
수많은 모스크, 유대교 사원, 가톨릭 성당이 섞인 도시들이 인상적이다.
암살단의 본거지인 마시아프 요새.
마시아프 요새는 실제로 있는 성이다. 실제 이슬람 아사신 파의 근거지이기도 했다고…
(어쌔신이란 영어 단어는 이슬람 아사신 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만 게임에서처럼 자유의지를 수호하는 투사로 나오지 않고, 약에 취해 돌아다녔다고는 한다)
사진 출처 : https://namu.mirror.wiki/w/%EC%96%B4%EC%8C%94%EC%8B%A0
개인적으로 이 배경이 너무 익숙했다…
중동은 아니지만…내가 갔었던 에티오피아 하라르.
풍경이 너무도 비슷하다. 저 아스팔트만 빼면...
실제로 벽에 저런게 튀어 나와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실제 굵직 굵직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연대기처럼 과거 파트가 시리즈로 이어지진 않는다.
시리즈가 흥행하려면 게임성 뿐 아니라 스토리의 연결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현대 파트가 이어준다.
현대 파트의 주인공은 데스몬드 마일즈라는 평범한 바텐더로, 갑자기 앱스테르고라는 회사에 납치되어 강제로 조상의 기억을 탐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어쌔신 크리드 3까지 출연한다
애니머스라는 기계의 도움으로 조상의 기억을 탐험하게 되는 데스몬드 마일즈. 하지만 앱스테르고 회사에 감금되는 처지일 뿐이다.
어떻게 방에 수건밖에 없는 건지… 아무리 감금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어쌔신 크리드는 기존 게임과 다른 특별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자유로운 이동이 특징이다.
주인공 파쿠르 기술을 사용해서 벽을 오르고 뛰어내리고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높은 탑도 맨손으로 곧잘 올라가곤 한다.
운동을 얼마나 하면 저렇게 쉽게 올라갈까..
사람인가 저게…
뭐, 요즘에도 맨손으로 세계 곳곳의 높은 건물을 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하긴, 그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 이건 게임이라서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워낙 파쿠르 이동이 잘 되어 있다보니 하라는 미션은 안하고 높은 탑만 보이면 무작정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그 수고가 기특해서일까, 높은 탑의 대다수는 지도를 밝힐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있다.
미션 중 필수로 해야 하는 것도 몇 개는 있지만, 굳이 안해도 되는…부가적인 탑이 대다수다.
이런 멋진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 교회 십자가까지 올라가서…
힘들게 올라갔는데 다시 힘들게 내려와야 할 필요도 없다.
신뢰의 도약이라고 해서, 그 어떤 높이에서 떨어지든 땅에 짚풀더미만 있다면, 주인공은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
어쌔신 크리드 1이 후속작에 비해 단조롭고 지루하긴 하다.
하지만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게임적 연출은 대단하다.
본부에 쳐들어온 십자군을 저지하는 장면, 십자군 전쟁에 뛰어드는 상황, 마지막 보스와 싸우는 장면 등은 후속 시리즈와는 다른 느낌이다.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하나…고전적인 RPG의 스테이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뭔가 특별하다.
그런 몇몇 장면들 때문에 굳이 어쌔신 크리드 1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본거지에 쳐들어온 병사를 막기 전 장면.
흔히들 쓰는 컷씬이 아니라, 모두 인 게임 연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난 이런 게임적 연출을 좋다.
은밀하게 이동하며 왼쪽 손에 숨긴 칼로 암살하는 플레이를 해야 하지만, 어느새 무쌍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안 들키고 몰래 죽이는 것 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전투로 전부 없애는게 수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쯤엔 대놓고, 암살이 아닌 개방된 곳에서 전투로 미션을 끝내야 하기도 한다.
하긴. 뭐 본 사람이 없으면 완벽한 암살이지.
13세기 중동에 있는 것 같은 그래픽, 파쿠르를 이용한 자유로운 이동, 군중 속에 숨어 은신 및 잠입하는 암살 시스템 등 여러 특징이 있고, 그것들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시리즈의 팬이 됐던 이유는 이런 게임성 뿐 아니라,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그냥 단순히 타켓을 특정하고 암살하는 게임일 수 있지만,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을 보면 왠만한 불한당이 아닌 이상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혹은 욕망을 가지고 행동한다.
자유를 중시하는 암살단과 질서를 중시하는 기사단.
둘다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위험한 집단이지만, 시대적 배경에 맞물린 그 신념들 때문에 자뭇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듯 하다.
뭐, 액자식 구성의 스토리텔링도 흥미롭지만…각 시리즈마다 내세우는 주제와 캐릭터의 성격을 비춰보면 꽤 깊이 있다.
어쌔신 크리드야 뭐 워낙 유명한 게임이지만, 생각보다 1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투박하긴 하지만 거친 맛이 있는 어쌔신 크리드의 첫번째 작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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