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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BOOK]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을 살 수 있다면

전망대와 미술관

  여행을 가면 꼭 하려고 하는 게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전망대 올라가기. 다른 하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 관람하기. 

  해 지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가서 쨍쨍한 한낮의 모습과 어스름한 노을, 어둑하고 눈부신 야경까지 한번에 보고 내려오면 도시의 시간을 다 목격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오거든요. 대개 그런 전망대의 입장료가 만만치 않긴 하지만, 본전은 건진 셈이죠. 물론 저녁 식사 시간이 애매해진다는 단점은있어요. 

  여행 중에 미술관을 들를 땐 꼭 진득하게 머물러서 관람하는 편이에요.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기고 오는데 꽤나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최소한 반나절은 오롯이 투자해서 둘러보고 나와요. 다리가 아프기도 하거니와 꽤나 호불호갈리는 취향이기도 하죠. 10여 년쯤, 뉴욕에 단체 여행 갔을 때 굳이 미술관 가겠다고 고집부렸던 기억이 나요. 다른 사람들은 타임스퀘어나 아울렛을 가려고 움직이는 사이, 저는 뉴욕 3대 미술관이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모마 중 어느 곳을 갈까 고민했더랬죠. 결국 자유 시간이 많지 않아서 모마밖에 못 가본 게 지금도 무척이나 아쉬워요. 아무래도 메트로폴리탄은 너무 규모가 커서 포기했던 거 같아요.

 

  이 두 개의 공통점은 여행 갔을 때만 유난 떨면서 방문한다는 거예요. 평상시엔 높은 곳에 잘 올라가지도 않고, 미술관도 자주 찾지는 않거든요. 흔히들 자기 사는 지역은 놀러 가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서울에 살고는 있지만 못 가본 핫플도 많고 관광지도 많아요. 어쩔 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가 더 잘 알 때도 있다니까요. 가까운 곳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가 싶기도 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더니, 비단 사람에게만 맞는 격언은 아닌가 보죠.

 

선망의 대상. 선망의 직업

  경비원이란 직업은 어떤 느낌인가요? 딱 떠오르는 경비원의 이미지는 아파트 경비원인데요. 흔히 보는 빌딩 경비 아저씨들은 CCTV 지킴이 느낌이 강하다면, 아파트 경비원은 이런저런 일을 하시니 더 생동감이 느껴져요. 택배도 맡아주시고, 조경이나 미화를 관리하시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도어록 없이 열쇠를 쓰던 옛날에는 부모님이 열쇠를 경비원 아저씨에게 맡겨두시면 제가 찾아가곤 했거든요. 이웃에 대한 믿음이 엄청났던 시절이었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베스트셀러 한동안 올라갔던 책이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인 데다가, 소재 또한 독특한 에세이라서 그런지 인기가 상당했어요. 제목만 보곤 짧은 체험기라던가 혹은 은퇴한 경비원의 회고록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일종의 도피처로 삼은 일자리였더라고요. 미술관 경비원은 단순한 교대직이 아니라 메울 수 없는 상실감을 외면하기 위해 선택한 자리였죠.

 

  여차저차 저자의 상황을 떠나서, 미술관 경비원이란 직업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품에 둘러쌓여서 작품은 물론이고, 작가, 감상자를 오롯이 관찰할 수 있는 직업. 그 누구보다 미술품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 

  부럽더라고요. 일행이 있거나 다른 일정이 급하면 진득하게 작품을 감상 못 할때가 종종 있거든요. 어쩔 수 없이 아쉬움만 간직한 채 떠나게 되죠. 반면, 경비원은 일상이잖아요? 언제든지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고, 지루할 때는 관광객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고요. 심지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워낙 크다 보니 질리기도 쉽지 않고, 주기적으로 전시품도 교체되니까 말이죠. 심지어 휴관일에 지인을 초대해서 프라이빗한 관람을 할 수도 있다니!

 

  문득 백엔드 개발자라는 나의 직업이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봉이나 복지, 워라밸 관점이 아니라 순수히 직업적인 측면에서요. 이 직업엔 이렇게까지 낭만이 없는데 부러워할 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던 순간, 그동안 수 많은 경비원과 마주쳤지만 그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메트로폴리탄 경비원 중에서 순간 순간을 감사히 누리며 그걸 기록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단순히 알바였다던 지, 난민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던지 등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일을 한 사람들 600명 중에서 말이에요. 그 중에 저자처럼 예술을 사랑하면서 삶을 회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부러워진 게 아닐까? 아 그러면 나 같은 생계형 개발자는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겠구나. 개발을 순수하게 즐기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을 부러워할 순 있겠다!

  뭐 그렇다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직업적 자부심을 억지로 가지지는 않을거에요.

 

아예 새로운 직업?

  이래 저래 관심분야가 많고 얕고 넓은 취미를 지향하는 지라, 해보고 싶은건 많거든요.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하나 개발해보고 싶기도 하고, 방탈출 카페 제작도 해보고 싶고요. 요새 가장 꽂힌 건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운영이에요. 조용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북스테이는 많지만, 대개 그런 공간은 독채 중심이라 가격이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북스테이! 투숙객에게 요리도 팔고 그러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돈을 벌어야겠단 욕심은 접어두고 그냥 체험을 하고 싶은 거죠. 한 3년 정도만 해보고 싶은데, 일단 버킷리스트에만 새겨둔 상태예요. 뭘 하던지 매 상황에 충실해야겠죠. 지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직접 가본 뒤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몰입되고 좋았을 거 같아요. 미술관 구조에 대한 묘사나 미술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흑백으로 나오는 전자책으로 읽으니 더 몰입이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메트로폴리탄을 가봤다! 추천!
  그리고 종이책을 더 추천!!!


다른 직업은 뭐가 있을 까요. 내가 하지 못 했는데, 아니면 할 엄두도 안나는 그런 거.

저한텐 기자. 그 중에서도 해외특파원 이에요.

 

AP, 역사의 목격자들 - 10점
지오바니 델오토 지음, 신우열 옮김/크레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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