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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BOOK] AP, 역사의 목격자들 - 귀멸의 칼날과 해외특파원

지하철 2호선 출입문 위에 종이 노선도가 아닌 LED 화면 있는 차량을 간혹 타요. 노선도 전용 화면은 아니라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상업광고가 나오기도 하는데 가끔은 영화나 드라마 예고편도 나오더라구요? 몇 년전엔 LED 화면 대신 역사 내와 스크린도어에 지면 광고만 가득했었는데 말이죠. 걔 중에 하나가 바로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극장편 광고였어요. 애니메이션을 진득하게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워낙 작화가 뛰어나다고 추천을 받아서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봤냐고요? 안봤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났어요. 그 극장판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 넘은 흥행 1위 애니메이션이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무렵, 넷플릭스엔 귀멸의 칼날이 올라와 있었죠. 그게 눈에 띈건 하필 설날이었어요. 매년 명절음식은 제가 도맡아 준비하거든요? 대표적으로 전이요. 녹두전, 육전, 동태전, 야채전 등등...그러니까 눈과 귀는 연 채 흐린 눈으로 하루종일 노동을 할 수 있다 이말이죠. 전을 부치면서 애니메이션 정도는 멍하니 볼 수 있는 연휴! 첫화부터 정주행을 시작했어요.
 
물론 설에 애니메이션만 주구장창 본 건 아니에요. 그 즈음 읽던 책이 이거였거든요. Ap, 역사의 목격자들. 사실 AP가 뭔지도 몰랐어요. AP? 액세스 포인트인가? 게임용어인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좀 찾아보니 해외뉴스에서 종종 뜨고하는 AP통신을 의미하던거였어요. 그래요 이건 그 통신사의 해외특파원 이야기였어요.
 

출처: Yes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4424130)

 
해외특파원에 대한 이미지는 종군기자 느낌이 강했어요. 가장 위험한 전투 근처에서 군인들을 취재하고, 전황을 세계 각지로 송출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사람들. 조금 자라서는 TV뉴스에서 현지 뉴스를 전달하는 파견 기자 정도로 생각했죠. 서울 본사에서 다른 지역으로 출장보내는 그런 느낌 말이에요. 그러다가 택시운전사 영화를 보고, 아 정치적이나 지역적으로 심각한 이슈를 전세계에 알리는 사람들이 해외특파원이구나 라는걸 알게됐죠.
 
이 책의 구성은 상당히 탄탄해요. 나열식에 가깝긴 한데, 수십명의 AP 해외특파원을 인터뷰한 책이거든요. 한 두명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라면 특정 사건과 상황에 대한 회고와 주관적인 판단이 실려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단순한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식으로 구술된 책이 아니더라구요. 해외특파원은 어떻게 입사하는지, 맡게 되는 첫번째 업무는 무엇인지, 데스크는 무슨 일을 하는지, 현지에서 어떻게 취재하는지, 현지 직원은 어떻게 포섭하는지, 취재거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실시간 뉴스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등등.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라고 보기에는 잘 읽히면서도 안 읽혔어요. 문장은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거든요.
 
본인에게 아무리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상대방에게 그 사실과 느낌을 오롯이 전달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심지어 생전 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기란 쉽지 않죠. 하나의 글을 쓰는데도 많은 고민을 들여야 하는데, 실제로 벌어지는 심각한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되도록이면 빨리 기사로 작성하는게 진짜 쉽지 않겠다 싶었어요. 어떤 취재거리를 선정해야할지도 중요한 포인트겠더라고요. 최근에 벌어진 속보만을 다룰 것이냐, 이 나라의 근본적인 이슈를 심층 취재하여 알릴 것이냐. 빠른 판단은 물론 확고한 신념과 기준이 필요한 직업이다 싶었어요.
 
혹시...아파르트헤이트를 아시나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인종차별정책인데 진짜 처음 들어봤어요. 와 내가 정말 국제 뉴스에 무지하구나 싶었다니까요. 이 뿐만이 아니에요. 시리아 내전, 팔레스타인 이슈, 사라예보 같이 어디서 한 번 들어보긴 했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건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물론 한국전쟁 같이 안타까운 우리나라 근현대사 사건도 소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은 너무도 낯설었어요. 난 지금도 여유로운 주말에 평화로운 거리를 보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선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득하다는 걸 새삼 알게되었죠.
 
귀멸의 칼날로 잠깐 다시 돌아가볼까요?? 귀멸의 칼날에서는 귀살대라는 집단이 있어요. 인간 세상에 숨어있는 나쁜 도깨비들을 처단하는 조직인데요. 해외특파원 조직과 유사한 점이 많더라고요? 

  귀살대 해외특파원
전국(세계) 각지에 퍼져있는가? O O
전문적인 교육과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O O
때로는 목숨을 거는가? O O
언제든지 어디로든 파견나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O O
본인의 일을 자랑스러워하는가? O O
근복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가? O X

 
창작물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해외특파원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거에요. 이 저널리즘 원칙에서도 왈가왈부가 많기도 하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글과 사진에는 힘이 있어서, 기자 한 사람의 인명구조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죠. 하지만 해외특파원도 사람이잖아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에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겠죠. 심지어 가끔은 그 상황 때문에 동료를 잃기도 하니까요. 
 
94년도에 퓰리처상을 받은 케빈카터의 사진이 생각났어요. 죽어가는 한 소녀의 옆에서 독수리가 기다리는 장면인데, 이 사진 때문에 지탄을 많이 받았었죠. 기자로써 비참한 현실을 대중에게 알려야한다는 사명과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휴머니즘의 간극은 본인에게도, 대중에게도 갈등 요소인 듯 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대의 vs 인간성 이란 주제 또한 창작물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클리셰인데 말이죠. 공상의 주제로만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현실은 그렇지 못하네요.

1993. Kevin Carter.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아, 흔히 말하는 사이버렉카랑은 다르다는 걸 한번 짚고 싶어요. 해외특파원은 타인의 약점과 고통에 집중하다기 보단, 그렇게 만든 상황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데 중점을 두니까요.
 
사실 처음엔 표지와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읽어야겠다 싶었는데요. 가볍게 시작했지만,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던 책이었어요. 그리고 EBOOK으로 읽느라 몰랐는데, 세상에 780페이지 책이더라고요? 이정도면 벽돌책인가? 읽는데 한참 걸리긴했어요. 잘 읽히듯 안 읽히는 책이긴 하지만, 올해 읽은 책 중에선 아직까진 1등이에요. 감히 추천해드리는 바입니다!


원래 이 책을 읽을 계획은 없었는데, 이 책의 도움을 받아야할 일이 생겨서 냅다 읽어버렸어요.
올해의 9번째 책은 이거에요.

제안서의 정석 - 10점
박신영.최미라 지음/세종(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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